2025년 11월, G20 정상회의(요하네스버그)를 계기로 MIKTA (믹타)의 정상 간 회의가 다시 열리면서 이 소그룹이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리더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공급망의 복잡성, 지정학적 긴장, 기후 위기, 디지털 전환 등 국제 사회가 직면한 다층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다자주의(multilateralism)와 국제법 준수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거버넌스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전통 강국(G7)이나 신흥 강국(BRICS)의 틈 사이에서 ‘중견국 클럽’으로서의 MIKTA의 전략적 가교 역할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 것입니다.
MIKTA란 무엇인가
MIKTA는 2013년 9월, 제68차 유엔총회(UNGA)를 계기로 외교장관들이 비공식 회의를 통해 처음 발족했습니다.
협의체의 성격
MIKTA는 정식 국제기구가 아니라 비공식, 컨설팅(자문) 플랫폼입니다. 외교장관 회의를 중심으로 연례 회의와 실무 레벨 회의, 전문가 워크숍 등을 통해 논의가 이뤄집니다.
https://zwe.mofa.go.kr/www/wpge/m_20171/contents.do
의장국(코디네이터) 제도
의장국(코디네이터)은 매년 순환식으로 돌아가며, 예컨대 한국은 2014~2015, 2020~2021, 2025~2026년 의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회원국 소개
MIKTA는 다섯 개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국은 서로 다른 지역, 역사적 배경, 경제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멕시코 (Mexico)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중견국으로, 미·중남미 관계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며 국제 무대에서 목소리를 내는 국가입니다.
인도네시아 (Indonesia)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국 중 하나로, 이슬람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역 및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다자주의를 중시합니다.
대한민국 (South Korea)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경제 강국으로, G20 회원국이자 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튀르키예 (Turkey)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 국가로, NATO 회원국이면서도 비서구적 세계와의 중재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호주 (Australia)
전통적 중견국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강하게 공유하며 태평양 지역 및 G20에서 역할이 큽니다.
이처럼 지리적·문화적 다양성이 매우 큰 그룹임에도, 공통적으로 G20 국가라는 점, 그리고 중견국이라는 위치에서 공공재와 국제 거버넌스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MIKTA 설립 목적과 비전
MIKTA 설립의 핵심 동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거버넌스 강화
전통적인 강대국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중견국들이 목소리를 내고 국제제도 개혁에 기여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 수호
유엔 헌장, 국제법, 다자주의 원칙 등 보편적 규범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국제사회를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다차원적 협력 (다중 연결성)
다문화·다지역적 특성을 살려 서로의 경험과 관점을 공유함으로써 글로벌 이슈에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역할 중재자(브리지)로서의 기능
세계 강대국과 신흥 강국 사이, 또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며 합의를 이끌거나 새로운 구상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개발협력 및 지속가능발전
개발협력기관 간 협의, 삼자 협력(triangular cooperation)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과 기술 공유,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합니다.
지금까지 MIKTA의 역할 및 결과물
MIKTA는 정식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군사적 동맹이나 거대 금융기구처럼 강제력을 가진 기관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동안 다양한 활동과 ‘정책 영향력’을 통해 나름의 성과를 내왔습니다.

외교장관 회의 및 정상급 협의
외교장관 회의는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유엔 총회나 G20 정상회의 계기에 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2017년 터키(이스탄불)에서 열린 제11차 외교장관 회의에서는 북한 핵 문제, 중동 정세, 난민 및 테러리즘 이슈 등에 대해 공동 입장을 논의했습니다.
2025년에는 G20 정상회의 계기로 정상급이 모여 기후 위기, 다자주의 강화, 공급망 안정성 등에 대해 공동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의회 차원의 협력: 스피커 컨퍼런스 (파라렐 채널)
MIKTA는 외교장관 수준뿐 아니라 의회 간 협의체도 운영합니다. 이는 각국 의회의 의장 (speaker)들이 모이는 MIKTA Speakers’ Consultation입니다.
예컨대 2015년 서울에서 제1차 회의가 열렸고, 2018년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평화와 번영: 의회의 역할”을 주제로 제4차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창조 산업, 여성과 평화, 해양 협력 등 다양한 주제가 논의되었고, 의원 간 네트워크가 강화되었습니다.
실무·전문가 수준의 교류
MIKTA는 장관급 외에도 총국장급, 기술 전문가, 청년, 언론인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워크숍, 세미나, 교환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습니다.
한 예로, 저개발국과의 개발협력,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공동 연구와 정책 제안을 위한 비공식 문서(non-paper)가 수시로 작성됩니다.


공동 선언문과 정책 메시지
MIKTA는 여러 글로벌 이슈에 대해 공동 성명(Joint Communiqué)을 발표해왔습니다. 예컨대:
기후 변화 관련 선언
개발재원(financing for development)
여성 권리 및 젠더 평등
에볼라, 글로벌 보건 위기
유엔 기반 평화 유지와 인권
테러리즘과 안보 문제
또한, 비공식 의견(op-ed) 형식의 공동 기고도 진행되어 왔습니다.
개발협력 (Development Cooperation)
MIKTA 국가는 개발 협력 분야에서도 잠재력을 키워왔습니다. 특히 각국의 개발협력 기관이 모여 실질적 협업 구조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
삼자협력(triangular cooperation)에도 관심이 크며, 기술 역량 공유, 역량 개발, 역내 및 글로벌 개발 문제에 대한 공동 접근 방식을 통해 시너지를 내고자 합니다.
MIKTA 평가 및 한계
MIKTA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있는 한편, 상당한 비판이나 우려도 존재합니다.
실질적 영향력 제한
정식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력이나 재정적 기구가 없습니다. 외교장관 회의는 유의미한 정책 구상을 발표하지만, BRICS나 다른 강력한 거버넌스 기구와 비교하면 제도화된 성과(예: 은행 설립, 예산 마련)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관성 부족
회원국들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공동 의제 설정과 실천에서 온도차가 존재합니다.
특히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MIKTA 내에서 통일된 강경 입장이 약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조지타운 대학 관계자의 평에 따르면, 2022년 공동선언에서도 강도 있는 제재나 명확한 공조보다는 조심스러운 어조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참여 수준 저하
일부 비평가들은 MIKTA 외교장관 회의 → 고위급 실무자 회의 → 나아가서는 박스 점심(photo-op)에 불과한 모임으로 위상이 낮아졌다는 지적을 합니다.
이는 ‘중견국 클럽’으로서의 정체성과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경고로 읽히기도 합니다.
구체적 제도화의 한계
MIKTA는 여전히 선언문과 공동 메시지 중심의 활동이 주를 이루며, 강제력을 지닌 제도나 재원 기반의 기구 설립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자금 조달,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 마련, 개발 협력의 실질적 프로젝트 실행 등에서는 제도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향후 과제 및 발전 방향
MIKTA가 앞으로 더욱 실질적이고 영향력 있는 국제 협의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중요합니다.
정책 우선순위의 재정비 및 집중화
다양한 주제(안보, 에너지, 기후, 개발 등) 중에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하고, 회원국 간 합의를 통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공급망 불안, 디지털 전환, 기후 위기 등 현재 국제사회에서 긴급한 이슈에 대해 더 강한 공동 메시지와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제도화 및 재원 마련 방안 모색
장기적 협력 프로그램을 위한 예산, 사무국 기능, 지속 운영 가능한 구조를 고민해야 합니다.
현재 선언 중심의 협의체에서 더 나아가 실행 가능한 프로젝트 기반의 클럽(governance club)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습니다.
삼자 및 다자 협력 확대
개발협력 기관 간 협업, 삼자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도상국 지원 역량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유엔,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기존 국제기구와의 연계성을 확대해 역할을 공고히 할 수 있습니다.
대외 정체성 강화
MIKTA의 외교적 정체성(‘중견국 브리지’, ‘다문화 클럽’, ‘규범 옹호자’)을 확립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 더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 포럼(예: G20, 유엔 고위급 등)에서 MIKTA의 공동 비전을 공유하고, 중견국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전략이 중요합니다.
민간 및 시민사회 참여 확대
정부 간 외교뿐 아니라 아카데미, 시민단체, 기업, 청년을 포함한 민간 레벨의 참여를 늘려 ‘클럽 거버넌스’의 다층적 성격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MIKTA가 단순한 외교 플랫폼을 넘어 글로벌 거버넌스의 민간-공공 연계 채널로 기능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성과 측정 및 투명성 제고
MIKTA는 선언과 회의 외에도 실질적 결과물(공동 프로젝트, 개발 사업 등)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투명성 제고를 위해 연례 보고서, 성과 지표, 공개 토의를 활성화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MIKTA는 전통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중견국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가교 클럽’입니다. 설립 이래 다자주의, 규범 기반 질서, 개발협력, 평화 유지 등 다양한 주제에서 외교적 담론을 형성하고, 정책적 메시지를 발신해 왔습니다. 특히 최근 G20 정상회의 계기로 다시 한 번 공동 의지를 확인하면서, MIKTA의 전략적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화의 부족, 구성국 간 우선순위 차이, 실질적 영향력의 한계 등은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MIKTA가 중견국 클럽으로서 단순한 ‘외교적 모임’을 넘어서 구체적 사업을 수행하며 지속가능한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진화하려면, 정책 집중, 제도적 기반 마련, 민간 및 국제기구와의 협력 강화가 필요합니다.
향후 MIKTA가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21세기 국제질서에서 중견국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 선명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