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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동 연쇄 살인사건 엽기토끼는 범인이 아니었다

by 오늘의 하루16 2025. 11. 24.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두 명의 여성이 잔혹하게 숨진 채 발견된 지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당시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이 사건은 명확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채 장기 미제로 남아 있었고, 세월이 흐를수록 진실은 영영 묻힐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 경찰의 전면 재수사 끝에 드디어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결론이 도출되었다. 오랜 기간 인터넷과 방송에서 ‘엽기토끼 살인사건’으로 잘못 알려졌던 오해도 동시에 해소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이 무엇인지, 20년에 걸친 수사 과정, 왜 오랫동안 진범을 특정하지 못했는지, ‘엽기토끼’라는 잘못된 별칭이 붙게 된 이유, 그리고 경찰이 마침내 진범의 DNA를 확보하기까지의 여정을 하나하나 정리해본다.

신정동 연쇄 살인사건의 전말

사건은 2005년 여름과 늦가을, 불과 몇 달 간격으로 벌어졌다. 모두 서울 양천구 신정동 주택가 골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연쇄 범행 가능성이 초기에 주목되었다.

 

 

 

 

 

첫 번째 사건(2005년 6월)
20대 여성이 실종된 뒤 한 초등학교 근처 골목에서 쌀자루에 담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고, 얼굴에는 검정색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다.

두 번째 사건(2005년 11월)
40대 여성이 신정동 주택가의 쓰레기 무단투기 장소에서 비닐에 싸인 상태로 발견되었다. 동일하게 질식사 형태였으며, 머리에 검은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피해자들의 연령대는 달랐지만 범행 수법, 은닉 방식, 장소가 같다는 점에서 동일범의 연쇄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당시 수사 여건으로는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고, 범인의 흔적은 교묘히 지워져 있었다.

이 사건은 2013년 결국 ‘미제’로 분류되며 장기 미해결 사건으로 넘어갔다. 사건 발생 후 10년, 그리고 20년이 지나도록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큰 의문과 공포를 남겼다.

 

 

■ 왜 ‘엽기토끼 살인사건’으로 불리게 되었나?

사건 발생 이후 실제 범인과 관계없는 한 장면이 온라인에서 널리 퍼지며 ‘엽기토끼 살인사건’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는 2015년 방송된 한 탐사 프로그램에서 나온 증언 때문이다.

2006년 같은 신정동 일대에서 발생했던 납치 미수 사건 피해자가 “범인의 뒤를 피해 도망가다 윗집 신발장에 숨었는데, 그곳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말한 것이 계기였다.

그러나 이 납치 미수 사건은

시기적으로 연쇄살인 이후의 사건이며

이후의 조사에서 동일범이라는 근거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당시 관리인 A씨는 해당 시점에 이미 다른 범죄로 수감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즉, ‘엽기토끼 스티커’는 연쇄살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방송에서 생긴 상징적 이미지가 대중의 기억에 남았을 뿐이며, 이번 재수사에서 그 오해는 완전히 해소되었다.

 

신정동 연쇄 살인사건 20년간의 수사

20년간의 수사 :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1) 초기 수사의 한계

2005년 당시 CCTV는 현재만큼 보급되어 있지 않았고, 골목 구간의 사각지대도 많았다. 범인은 비닐과 포대 등을 사용해 증거를 최소화한 정황이 남아 있었다. 그 결과 번번이 추적이 끊겼고, 피해자와 범인 사이 명확한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았다.

2) 방대한 수사 범위

경찰은 이후 장기 미제 사건으로 전환되기 전까지 8년 동안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했다.

신정동 방문·거주자

공사장 근무자

일대 범죄 전력자
등 23만 명 이상을 잠재 용의자 군으로 분류해 점검했다.

하지만 유의미한 DNA 일치자는 나오지 않았다.

3) 2016년 이후 ‘미제사건 전담팀’ 출범

경찰은 다시 사건을 정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2016년·2020년 두 차례 국과수에 증거물 재감정을 의뢰한 끝에 두 피해자 시신에서 나온 용의자의 유전자형이 동일하다는 결정적 결과를 얻었다.

이후 DNA 기반 과학수사와 지난 20년간의 모든 기록을 다시 대조하며 수사 방향을 좁혀갔다.

 

 

■ 결정적 단서 : ‘모래’

두 피해자 모두 시신에서 특정한 유형의 모래가 검출되었다. 이에 경찰은 당시 서울 서남권의 공사현장 관계자, 신정동 일대 출입자, 토목·건설업 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용의자 군을 다시 좁혔다.

여기서 경찰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1,514명의 DNA를 채취해 대조했지만 끝내 일치하는 유전자를 찾지 못했다. 이때부터 경찰은 범인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을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심이 사건 해결의 시작이었다.

 

 

■ ‘사망자’로 범위를 확대한 경찰, 56명을 다시 조사하다

경찰은 당시 신정동 일대와 연관이 있는 사망자들을 선별해 총 56명을 후보군으로 설정했다.
이 중 가장 수상한 인물이 바로 신정동의 한 빌딩 관리인으로 근무했던 A씨였다.

A씨가 용의선에 오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건 당시 신정동 일대 건물에서 관리 업무 수행

피해자 발견 지점과 그의 근무지·동선이 겹침

건물 내부 구조와 골목길을 매우 잘 알고 있었음

시신 은닉 방식, 이동 경로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접근성 보유

사망 시점이 2015년으로, 장기 미제로 굳어진 시기에 일치

하지만 문제는 A씨가 이미 사망했고, 화장 처리까지 된 상태였다는 점이다.
DNA 채취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경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정동 연쇄 살인사건 진범

경찰은 A씨의 DNA를 확보하기 위해 그가 생전에 방문했던 병원·의료기관 40곳을 일일이 탐문했다.
그리고 드디어 한 병원에서 그가 생전에 남긴 검체를 발견했다.

 

 

 

 

 

이 검체를 국과수에 재감정 의뢰한 결과,
두 피해자의 DNA와 일치한다는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즉,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은
2015년에 이미 사망한 A씨였던 것이다.

사건은 그의 사망으로 인해 결국 ‘공소권 없음’ 처리될 예정이다.
비록 법정에서 죄를 물을 수는 없지만, 20년 가까운 미제로 인해 고통받았던 피해자 가족과 지역 사회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결과다.

 

■ “엽기토끼는 범인이 아니었다” — 오해의 종결

이번 결론이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오랜 기간 무분별하게 퍼져온 엽기토끼 스티커=범인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공식적으로 정리되었다는 점이다.

경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엽기토끼 스티커’ 목격 증언은 2006년 납치 미수 사건의 상황일 뿐

연쇄살인 사건과는 무관하며

해당 납치 미수 사건 당시 A씨는 수감 중이었다.

즉, ‘엽기토끼’라는 단어는 사건의 본질과 아무 상관이 없는 우연한 이미지의 혼동이었다.

이번 재조사 결과는 잘못된 여론 판단이 얼마나 큰 왜곡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 사건이 남긴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

DNA 과학수사의 중요성
수십 년이 지나도 남아 있는 최소한의 검체가 사건 해결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미제 사건 전담팀의 역할 강화 필요
이번 사건은 전담팀의 집중적 노력과 재감정 과정이 아니었다면 해결이 어려웠을 것이다.

언론·대중의 과도한 추정에 대한 경계
‘엽기토끼’처럼 사실과 다른 요소가 사건의 상징처럼 굳어지는 현상은 피해자·유가족, 그리고 무관한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완전한 해결이 아닌 ‘사실 규명’의 중요성
범인은 이미 사망했지만,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다는 것만으로도 사건의 의미는 크다.
경찰의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말처럼, 장기 미제 사건에 대한 의지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길이다.

 

2005년 신정동에서 벌어진 두 건의 잔혹한 살인은 긴 시간 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범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DNA를 비교하고, 사망자까지 조사해 진실을 찾은 경찰의 과정은 한국 강력 사건 수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결론은 명확하다.
엽기토끼는 범인이 아니었다.
사건의 진범은 신정동의 골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한 관리인 A씨였으며,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20년 만에 실체적 진실이 밝혀진 이 사건은
미제 사건 수사의 의지를 새롭게 일깨우며,
잘못된 오해와 추측의 위험성까지 함께 일러주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